아무리 괜찮은 남자를 만나더라도 라정의 애정은 그의 털과 함께 공존하지 못했다. 가슴 털이 수북해서, 다리털이 빗질해도 될 만큼 길어서, 저녁만 되면 수염이 듬성듬성 올라와서, 여름날 넓은 소매통 안으로 들여다보인 겨드랑이가 무성해서. 그녀의 애정과 흥분이 사그라지는 이유는 늘 ‘털’이었다. 아무리 취향에 맞게 잘 조리된 맛깔스러운 음식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구불거리는 털을 발견한다면 한순간에 입맛이 뚝 떨어져 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이러다가는 정말 남자랑 섹스는커녕 고추 구경도 한 번 못 해보고 죽을 것 같았다. 그런 그녀에게 오래된 친구 녀석이 아주 덤덤하게 말했다. “내 거라도 털 뽑고 보여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