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산혈해(尸山血海). 시체의 산과 피의 강. 그 꼭대기에 오직 두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왜 나를 구했지?” “이제야… 저를… 봐주시는군요.” “다시 묻겠어. 왜 나를 구했지?” 사내는 궁금했다. 당연했다. 여인은 자신의 숙적이었으니까. 그리고 숙적과의 승부는 이곳에서 갈려야 했다. 종막은 자신의 죽음이었다. 수하라 믿었던 이들은 자신의 등을 찔렀고, 그보다 더 많은 적들이 자신을 노리고 달려들었으니까. “대답해. 왜 나를 살려 놓은 거야!” “울지 마요….” “내가… 울고 있어?” 언젠가 메말라 버린 줄 알았던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저 나쁜 꿈을 꾼 것이라 생각해요. 무척 괴롭고 나쁜 꿈을.” “하지만 나와의 시간이 조금이라도 가치 있었더라면.” “악몽의 끝에서라도 저를 다시 찾아주세요.” 쿵쿵쿵쿵. 시체의 산이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검붉은 대지 너머로 희뿌연 먼지와 함께 수많은 깃발들이 일어섰다. “으아아아아아!” 거대한 핏빛의 깃발을 본 사내